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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 - Adventure/[2011]20대에 하고싶은것

[2011.08.20] 아카시아 오버랜딩 투어 세컨 라운드. 타운쉽투어

2012.3.25 사진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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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같은방을 쓰던 다른 여행객에게 안전에 대한 주의 사항들을 잔뜩 얘기해주고나서야 잠을자게되었다.
내가 카메라 도둑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는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트럭투어를 하던 도중 전재산을 도둑맞은 얘기까지 나올수 밖에 없었다. 내게 질문을 던지던 그를 비롯한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주목하며 침묵했다. 그때부터 나의 이야기가 여행자들의 주목을끌기 시작했던것 같다.

다음날 해가뜨기도 전 일어나 준비를 서둘렀다. 지난번처럼 부킹탭을 놓고 나가서 금액을 못받는일이 없도록 태깅을 때 반납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아샨티에 있는 쓸모없는 Rule 중 하나로 해당 침대를 자신이 쓴다고 표시해놓는 택(Tag)이다. 의무적으로 해야하며 돈을 지불하고 택을 받은후 나중에 퇴실시 반납하면 돈을 돌려준다). 샤워도 하고 짐을 다 챙기고 나서도 시간이 남았다. 트럭에 좋은자리를 미리 맡으려 했던건데 아직 트럭의 문은 굳게 잠겨져있다. 아샨티에서 아침에 제공되는 팬케이크 반죽도 준비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뒤 투어리더인 제이(Jay)가 왔고 짧은 오리엔테이션이 한번더 있은후에 트럭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이미 그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은 다음이었다. 원하던 자리는 지난번에 앉았던 그자리였는데 이미 그자리를 다른 친구들이 점령해버렸다. 그래도 나중에는 운이 좋게도 원하던 자리에 앉았다. 팬케익을 만들기위해 주방으로 들어가 후라이팬을 찾고있는데 우르르 몰려와 팬케익반죽을 장악해버렸다. 그저 난 그들이 던져준 팬케익을 목메여가며 삼킬 뿐이었다. 힘겹게 한조각 먹은후에 할일없이 호스텔을 서성여 보았다. 모두가 자기들끼리 말하기 바쁘다. 나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가고 나의 고독은 더욱더 깊어져갔다. 만약 처음부터 내가 혼자였더라면 이런 고독을 느꼈을까? 만약 카메라를 잃어버리지 않고 조용히 주변을 멤돌며 원하는 사진을 찍었더라도 이런 쓸쓸함을 느꼈을까? 출발시간이 다되어서야 카메라에 대한 미련이 샘솟은 친다. 눈물을 머금고 두번이나 구입했던 나의 카메라. 다시 이렇게 다시 이땅에서 잃게 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아카시아의 출발지인 아샨티>

첫 일정은 타운쉽투어. 예전에 처음 이말을 들었을때 케이프타운의 주요 볼거리를 돌아 보는 투어일거라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대한 설명과 관련 지역을 둘러보는 타운쉽투어는 케이프타운에 대한 관광에 대한 약간의 정보 외에는 아는게 거의없던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인종차별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상상한것 이상의 차별들이 존재했다. 내가 상상한 아프리카아닌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에 실망하던 내게 실제 모습을 보여줬던 타운쉽투어. 아카시아에서는 타운쉽투어를 하는 다른 업체에 우리를 맡기고 오전일정은 그들에 의해 진행이 된다.

<타운쉽투어 차량과 가이드>

타운쉽투어의 첫번째는 디스트릭스 6 주변을 방문하고 설명을 듣는 일이다. 디스트릭스 6는 본래 흑인도 백인도 상관없이 살던 구역이었는데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일환으로 해당 지역이 백인 전용 구역으로 지정이 됬다. 얼핏듣기로는 그곳의 경관이 좋고 교통이 요긴해서였다고 했던것 같다. 백인 구역의 깨끗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그 지역을 싹 밀어버렸다. 하지만 그 이후 인권단체와 국제여론으로 개발이 어려워졌고 몇개의 건물만 지은채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공터로 남아있다. 이것을 영화 디스트릭스9에서 흑인 및 유색인종을 외계인으로 바꿔 풍자했다. 영화에서도 그 지역에 뭔가 돈되는것으로 바꾸려고 외계인을 다 내쫓으려고 했던것 같은데 오래되어 정확한 기억은안난다.


<District Six 지역>

<슬픈역사를 가이드에게 설명을 듣고있자니 모두의 표정은 어둡어둡>

그 이후에 가게된곳은 랑가(Langa)이다. 이 랑가는 디스트릭스식스의 흑인 주민들을 모아 흑인거주지를 만들었던 곳 중 하나로 랑가는 코사어로 태양을 뜻한다. 코사어는 케이프타운 쪽에 거주하던 부족인 코사족이 사용하던 언어이다. 당연히 흑인 거주지에 복지나 투자가 잘될일이 없어 케이프타운 중심가와 30분도 안떨어진 이곳은 전혀 다른세계가 펼쳐져있었다. 허물어져가는 집들, 맨발로 빈병을 모으던 아이들.... 문제는 이곳에 사는 그들 모두가 흑인이란 사실이다. 최근들어 이곳에 대한 예산이 조금씩 생겨 현대식 건물과 태양열 발전기가 들어서긴 했으나 그것은 어느정도 돈이 있는 자들을 위한것이었고 여전히 그곳은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다. 씁쓸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는 가이드의 설명들은 이미 한번 들었기에 몇 가말들이 리긴 했지만 역시 알아 들을순 없었다. 그 순간 마음이 허전했던 것은 예전처럼 옆에서 가이드의 말을 설명해줄 홍준이도 없고 "쟤 뭐라카노" 라고 웃던 화진이 누나도 없기 때문이었을거다. 가난한 그들의 생활을 보면서 자신이 어렸을때 모습같다던 학범이 형님도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아파하던 명원이 누나도 없다. 그때 함께 투어하던 사람들은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한참을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 팀 사람들은 그저 기념품 사기에만 바쁜 모습인것 같아 그 또한 내 눈에 비교되 보였다. 이곳에서 기념품을 파는 그들도 그것을 느낀것일까? 예전에 비해 높은 가격을 부른다.
그리고 또 다시 보게된 하얀 전통주 음꼼보. 모두가 한번씩 돌아가면서 마시는데 이전 멤버처럼 즐거워하는 사람도 한국의 막걸리 맛이라며 웃던 형님도 없다. 마치 신성한 의식이 되는듯 조용히 입에만 대보고 끝나버렸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훨씬 일찍 타운쉽 투어가 끝나버렸다. 점심으로 먹게된 브라이(바베큐)도 그때 처럼 맛있지가 않다. 마이너스한 감정때문인지 목이 막혀 사바나드라이(전편 참고)를 사러 밖에 나갔다 왔다. 하지만 이들은 식사도 빠른편이었는지 이미 모두의 식사가 끝나 나혼자 식은고기를 꾸역꾸역 삼켜야했다. 

<가난한 이들의 주식이 되었던 양 머리고기>

<너네는 우리집에서 뭐하니?>

<형 왔쉅?!>

<이거나 먹어라>

<동내 아이들 헤어스타일도 범상치가 않다>

<랑가지역에 있는 아파트는 이런 모습이다, 그 밑으로 임시로 만들어진 기념품상점>

<위에서 부터 교회, 미장원, 슈퍼마켓>

<대부분 판자집이기에 공공화장실을 사용한다>

<최근에 나라돈으로 만들어진 집들과 각 집들의 태양열발전기 시설>

<이 왼쪽아이는 계속해서 내 손을 잡고 따라다녔다>

<점심식사를 준비 하시던 아주머니>

<경건한 의식처럼 음꼼보를 맛보던 새로운 나의 팀>

<이것이 바로 음꼼보. 뭔가 탄내가 가득한 막걸리랄까?>

<코사족의 전통주 음꼼보에 도전하는 이몸>

<랑가에서 구입한 팔찌>

<위의 양철 집이 랑가에 있는 일반인들의 집이다>

<나오는 길에 본 Langa 표지판>

<점심식사를 했던 식당과 브라이(바베큐). 저 스푼은 무지약해 금방 부러진다>

<구슬치기 하던 동내 아이들>

<공동으로 물을 사용하는 랑가>

타운쉽투어 이후에 아카시아 트럭에 올라타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끝도 없이 펼쳐진 목초지대를 지나 달리고 있을때 이전 멤버들과 서로 그 풍경에 감탄하던 모습이 떠올라 한층 외로움이 깊어졌다. 5시간쯤 달렸을까? 이전에 보았던 그 와이너리에 도착한다. 외로움이 커져있던 그때 나를 반겨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니콜라스다. 니콜라스는 우리 투어차량의 운전사 중 한명인데 내가 이전에 도둑을 맞고 케이프타운으로 돌아올때, 돌아오는 길을 함께 와주었던 친구다. 비록 그가 내 물건들을 훔쳐간 범인들과 한패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가 진심으로 반가웠다. 
"니콜라스!!!!"
"오 마이 코리아 프렌드!!!"
뜨거운 포옹을 나눈 후 그는 투어리더인 제이와 다른 멤버들에게 이전 투어에서 나와 친구가 되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드라이버의 식사는 항상 마지막이라 부족한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그가 안되보여 식사를 챙겨주엇었는데 그때 일을 기억하여 이야기를 하던 그를 보면 차갑게 식어있던 가슴 한켠이 조금은 따뜻해 졌다. 

<나미비아 국경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룸피>

<트럭 내부의 모습이다. 아래 네명은 왼쪽부터 스코틀랜드 커플 나탈리, 스티븐 호주의 엘리스 독일의 스테판>

<이동 중 대형 마트에 들려 공동 식재료와 개인간식등을 구매한다>

<주유소와 휴게소>

<쭉쭉 뻗은 도로, 와이너리 가는길>

<와이너리 캠핑장. 뒤쪽 멀리 포도밭이 보인다>

저녁 먹기전의 와인테이스팅. 모두가 와인을 좋아하던 백인들인지라 날 제외하곤 모두 테이스팅에 참석했다. 혼자 남게 되어 어영부영 있다보니 한쪽 자리에 앉게되었는데 이전의 아일랜드 아줌마 처럼 내게 자신 몫의 와인을 맛보라며 나눠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비용을 지불하고 테이스팅에 참여 하였고 이전 투어에서 함께 했던 세계여행중인 명원이 누나가 사주었던 아프리칸(African)을 구입했다. 혼자 텐트를 치고 혼자 취침 준비를 하고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밤하늘을 바라본다.
이들은 저 별들 보다 눈앞에 있는 식사가 더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렇게 수많은 별들 아래의 순간이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이 전처럼 은하수를 보며 감탄하며 소리를 지르던 게이브를 비롯한 사람들은 없지만 은하수는 그때 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날 내려다 본다.

<와인메뉴판>
<테이스팅 와인들>

<사자가 그려진 글라스>

<맘에 들었던 스파클링와인, 뒤로 내가 러블리하던 아프리칸>
 
오늘 나의 기분은 마치 연인과 헤어진 남자가 연애를 하던 중 함께 여행한 곳을 혼자 다니는 느낌이다. 그때 갔던 그장소에가서 같은 길을 걷고 같은것을 보고 그때 먹었던 음식을 다시 또 먹는 그런 느낌. 단지 그 모든것이 혼자인 느낌. 그런 외로움이 물밀듯 밀려들어 나의 슬픔은 더 커져갔다. 노을져가는 아름다운 하늘은 나를 더욱 쓸쓸히 하는 동시에 이 풍경을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여 잃어버린 카메라를 또 떠올리게했다. 어제 구입한 중고 카메라는 베터리가 이미 끝나버렸고 나미비아 국경을 넘기 전까진 충전도 못하는 상황이다. 하긴 베터리가 충분했다고 해도 이 고물카메라로는 이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리라. 새로운 투어 팀에 대한 첫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고 이전팀에 대한 그리움을 강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외로움이 사라지길 기도하며 하루를 마쳤다.

- 가계부 -
팔찌 50
팔찌 20
목걸이 12
사바나드라이 6
간식 22
와인 130
토탈 240 랜드, 한화 40800원.

- 덤 -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흑백인종간의 인종차별이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넬슨만델라가 감옥에 간 이유도 이것 때문이고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이룬일들도 이것 때문이다. 차별의 예를들자면 흑인구역을 따로 두어 백인과 분리하였고 가질수 있는 직업을 제한하였으며 백인과는 결혼을 할 수 없었고 공공시설의 이용도 제한이 있었다. 심지어 공원의 밴치에도 White only 라고 쓰여있다.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후에 철폐되었으나 이미 백인들은 사회의 지배층이었고 정책으로써는 아니지만 차별과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영화 디스트릭스9 는 아파르트헤이트를 풍자하고있다.


- 덤 2 -
아프리칸스 어
사실 이번 여행 이전에 아프리칸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일부사람들이 독일어 비슷한 말을 쓰고있는데 독일어도 아닌것 같고 도대체 무슨언어인지 몰랐다. 그러다 트럭투어 리더였던 Jay 가 쓰는 말을 보면서 물어보게 되었다. 지금 사용하는 언어가 독일어인지 어떤언어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는 아프리칸스 라는 말이라며 언어에 대하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의 내가 간략히 설명한다면 네덜란드언어가 변형된 남아공 및 남부에서 많이 쓰이는 언어이다. 내게는 독일어의 발음처럼 들렸다.